귀농: 농부로 사는것 (내나름대로 재정의한 개념풀이)
전략: 전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 나라의 군사와 경제 및 정치를 비롯한 모든 자원을 이용하는 기술
뜻풀이로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 조합이지만 통상 이해되는 범위로 이해하고
내 계획을 뜬구름 잡는다는 식으로 취급하는 이들 들으라고 조목조목 실질적으로 이야기를 푼다.
물론, 이 계획은 수시로 고치고 다듬어진다.
사실, 귀농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겉으로 봐서는 시골에 살러 가는 "이사" 만으로도 "귀농"이니까.
문제는 그곳에서 뭘 하고 살것이냐인데
그건 그곳에 정착할 장소를 마련하는것에서 비롯된다.
기본여건, 즉, 현재 가진 자금으로 땅을 마련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 경우 그럴 여유가 안되니 대게 그러듯 '빈집'을 구 할 일이다.
예정지에서 수소문 해 몇 집을 둘러 봤는데 너무 낡아 수리는 커녕 새로 지어야 할 판이다.
이에 귀농선배 경우처럼 마을회관을 빌릴 수 있기를 바라는 중이다.
나 혼자라면 크게 문제될것도 없는데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적절한 답은 아니다.
다만, 귀농시기를 이른 봄으로 잡은 덕에 겨울전까지 시간여유가 있다.
자투리 땅이라도 구해지면 흙부대집을 지을 계획이다.
일단 네평짜리 방 한칸과 뒷간. 다음은 부엌, 창고 순으로 증축할것이다.
건축관련 법률 문제도 알아 볼 일이다.
집문제와 별개로 이른 봄을 귀농시기로 잡은 가장 큰 이유이자,
혼자 준비하며 상담했던 거의 모든 농민들이 말리던 나락농사.
내 귀농성공여부의 첫단추는 나락을 거둘수 있냐 없냐에 달렸다.
자급자족의 맨 밑바닥이니까.
다행히 예정지 주변에 농지정리 안된 노는 논이 제법있어
두마지기 정도의 도지는 쉽게 구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다.
토종을 구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반마지기는 직파를 해볼 작정이다.
해당지역에 물이 귀하다.
농업용수를 거의 지하수로 퍼올려 쓰고 있는 실정이어서 꼭 시도해 봐야 할 과제다.
옛날엔 제법 흘렀다는 내(川)가 비온 뒤에 가봤음에도 실개울이었다.
농법은 우렁이가 맞겠다.
오리는 알을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지만 현재로선 관리나 시설이 버거울것 같다.
나중에 오리 목을 비틀 담력이 없는것도 큰 이유.
3~4년 내 나락거두기를 성공한다는 가정하에
부산에 남은 식구들이 그토록 걱정해 마지 않는 돈나올 구멍으로 "멋(사과)"을 골랐다.
해당지역에 고랭지 과수로 이미 자리를 잡은 이유도 있지만
일단 내가 사과를 좋아하고, 역시나 "기무라 아키노리"의 영향이 크다.
또 궂이 작물로 돈을 번다면 그사람 방법이 그나마 제대로 된 돈벌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 양심에 맞는 돈벌 꺼리를 학교다니면서 알게되었는데
바로 인력 농기구 개발이다.
이미 "인력 쟁기"가 관심 끌고 있는데 자전거동력을 좋아하는 내가 볼때는 개조의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일단, 자전거 쟁기를 구상중이고 이후엔 아내를 위해 자전거 배틀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만들어진다면 농사가 덜 힘들어지는걸 넘어 재미있는 농사가 될걸 상상하면 기분 좋아진다.
그렇게 되면 농사체험이란 틀조차 차원이 바뀌는건 아닌지.
"먹는걸로 장난 치지 말라" 는 말에 빗대면 작물을 팔아 돈버는 모든 행위가 이에 속하니
차라니 인력농기구 개발이 떳떳한 장사거리가 되겠다.
사람들이 말하는 돈구멍을 뚫어야 하는 이유중 가장 큰 까닭을 짐작해 본다.
아플때와 교육정도로 걸러지는데
아플때 드는 돈은 솔찍히 답이 없다.
이미 들어 있는 보험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점에서 의료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한다.
예방을 기본으로 좀더 궁리해보야 할 부분.
다음으로 크게 꼽는 "교육"
논어 학이편에 이르길 (논란이 분분한 부분은 빼고)
"배우고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
배우고 익히는것은 자신의 몫이다.
'주입식'이니, '자기주도식'이니를 방법론으로 볼 수 없다.
그것들은 억지와 다그침의 말장난이다.
'사교육', '공교육', '대안교육'도 틀린 구분이다.
장사와 복종과 또다른 돈벌이로 나누는게 좀더 정확하다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은 본보기와 가르침이다.
상대적으로 얕은, 좁은,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를 설득하는것.
이것이 본보기와 가르침. 곧 교육의 본질이다.
본보기와 가르침을 위한 설득이 말로만 이뤄질까?
실제로 우리집은 처음부터 텔레비젼이 없다.
신혼때 아내가 심심해 죽으려 해서
박시백이 그린 "조선왕조실록"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살렸다.
만화로 재미를 붙여주자 곧 조선사 관련 책을 찾아 빌려 보기 시작했다.
(결국, 소설로 빠져 조금 아쉽긴 했지만 - 나는 소설을 안 읽는다.)
분위기가 잡힌 것이다.
당연히 아이들도 책을 잡고 놀고,
특히, 맏이는 내가 읽어 준 글 모양을 어느새 익혀 꽤 어려운 받침도 읽어 내는가 싶더니
어느날엔가 자기 이름을 삐뚤빼뚤 적어서 내게 자랑 하기에 이르렀다.
자기책 두권 가진 작년, 네살때 일이다.
주위 분위기에 들떠 당시 일곱살, 다섯살짜리 조기교육에 열올리던 여동생에게 의도치 않게 한방 먹인 사건이었다.
그동안 불안해 하던 아내는 이후 내 교육관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는다.
물론, 어쩌다보니 생긴 결과일수도 있다. 또 언젠가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때가 올것도 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남과 같이 호들갑 떨 필요를 못 느낀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을 실감한 나로선
읽기와 글쓰기, 말하기를 다시 공부하고 있다.
내가 공부를 하면 장난감 갖고 놀다가도 자기들 책 들고와 곁에 쪼로록 앉는다.
아들은 상어에, 딸은 공주에 푹 빠져있다.
이런 아이들을 소위 좋은 직장에 취직시키기 위해,
결국 자본주의 소모품으로 만들 대학에 보내기 위해
저는 저대로 나는 나대로 의미없는 고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스스로 자기 여건을 선택할 권리를 뺏은 거라고는 안 보냐?"는 반문에 대해선
시골이 없는 집안 여건상 개발되기전 영도 동삼동으로 어릴때 이사와 준시골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도시생활과 비교할 정서를 어찌 다졌을까.
여전히 시골이 없는 친지관계인 지금, 내가 직접 그 터를 잡지 않으면
걱정하시는 선택의 여지를 주지 못하는건 오히려 도시에 눌러 살때라 본다.
<<계속 덧 붙여지고 고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