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수업에서 듣던것과 달리 귀농이 대단히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거창같은 경우는 귀농지원행정이 선두적인 이유가 크겠지만 자주적으로 부뎃길꺼리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 지역귀농민 정보망도 예비귀농인을 끌어 들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이미 귀농수용가능 가구가 정점을 내다보고 있어 귀농을 해도 농사지을 땅을 찾기가 쉽지 않은 지경이라고.
이에 자금부족한 사람이 정착할 기회가 크게 줄어들어 빈집도 드물고, 다른 지역대비 땅값도 이젠 더이상 싸지 않다.
귀농하기 좋은 곳으로 이미 알려진바 안착한 귀농인들 의식또한 깨어 FTA대책으로 자급소농을 답으로 인식하는게 일반적이며 지금 추세는 쉽게 바뀌지 않을것이다.

이같은 사실에 비추어 다시 철저한 준비와 적절한 귀농시기에 대해 돌아보게되는데 개인적으로 아무리 철저한 준비도 헛점은 있게 마련이고 그를 메우는 것 또한 굳이 자신이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어쩌면 할 수 없다는게 정확한지도 모르겠다.
그 부족분은 같이 살 동네사람들에 의지해도 좋을 부분이다. 어느 강사분 말마따나 언제까지 준비만 할건가.
벌써 귀농은 대세로 진행중이고 앞으로 더욱 활발해 질 전망이다.

고로 내생각은 적절한 귀농시기가 더 중요하다고 보며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최소한의 준비는 마련한 상태로.

본인각오, 가족동의, 구성원끼리 공유된 목표. 2~3년치 기본 생활자금, 기회가 되면 작게나마 자기땅을 가질 수 있는 뭉치돈.
내 기준 최소 준비사항인데 이미 귀농안착 하신 분이 "준비 다 했네. 어서 오소." 한다.
뭔가 더 치밀한 준비를 고민하던 머리가 조금 가벼워진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de12 트랙백 0 : 댓글 0

귀농이유

2011/11/04 17:31 from 먼산

뭔가 잘못 되었다고 느껴지면 어떻게 하나.
잘못된 시점으로 돌아가 고치려 하겠지?
그 시점조차 모르겠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내 뜻대로 사는 모습이 불안해 보여 부모님은 남과 같이 살기를 5년만 하라고 말씀하셨다.
5년후엔 반드시 부모님 말씀이 옳았다고 할거라면서.
때 되면 돈 받는 직장을 다니며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고, 맏이가 5살이 되도록 무난히 살고 있다.
누가봐도 안정된 삶 뒤로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자기배반이 괴로워 병이 날 것 같다.

건강하게 살려면 머리는 차게하고 몸은 따뜻하게 하랬다.
더운 기운을 위로 올라가고 찬기운은 아래로 내려가니 생기가 도는 것이다.
젊어 고생 사서도 한다는건 뭐고, 역동적이어도 모자란 삶에 안정적이라니..
곧 죽겠다는 말이지.

그나마 그 "안정"이란것도 자신이 어찌 할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이지 않나.
사람들이 말하는 안정은 돈위에 앉았을때만 가능하다.
"돈"의 효용은 가치교환에 있는데
내가 원하는 가치는 돈으로 구할 수 없는게 대부분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다가 죽을거다.
부모님, 친지, 소위 인생선배로 분류되는 분들께 지겹도록 듣던 말

"제 하고싶은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딨냐."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최초가 되지 뭐.


"누군 하고 싶은게 없어서 안 하는줄 아냐."
이말 하는 사람치고 하고싶은게 뭐냐고 되물으면 시원히 대답하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났다.

"사람으로 나서 해야할 일이 있는거다."
그 해야할 일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나는 내목숨을 내가 쥐고 살거다.
그 방법으로 농사를 택한다.
돈이 세상 다는 아니지만 없이는 못산다는데
나는 돈 씹어 먹고 살 수 없어서 어쩔 수 없다.

하고 싶은 일중 으뜸이 돈없이 살기다.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고,
기타와 피리로 생활공간을 채우고 싶다.
맑은 하늘 탐스런 뭉게구름과 해질녘 풍경을 그리고
매끼 밥을 손수 지어 가족과 먹고,
몸이 찌뿌둥하거나 마음이 나른한 날은 방바닥을 뒹굴거나 발길 닿는 대로 걷는다.
필요한 도구나 물품은 허술하더라도 직접 만들어 쓰고,
아내가 지어준 옷이 흠뻑 젓을때까지 자연과 부데낀다.
아마도 얼마 안되는 땅에서 거둔 알량한 먹거리를 내 좋은 사람들과 나눠먹는다.
돈에 매인 회사생활에서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들이다.

젊을때 열심히 벌어모아 늙으막에 그러고 살면 되지 않냐는 반문을 곰곰히 다시 따져 보자.
바보가 따로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따르는 책임, 의무, 뭐 기타 뭐시기 저시기..
그것들은 돈에 매인 삶에서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더만.
더군다나 그래야 하는 이유도 남의 돈 손해 입혔을 때라는게 어이가 없다.

나는 궂이 비관론자다.
세상은 무정하고, 강자가 약자를 능욕하며, 약자는 비굴하고, 끝을 향하는 삶에 내일을 염려하는 사람은 적다.
겨우 서른 여덟해 살았지만 내눈에 뵈는 세상과 나보다 더 사신 어른들에게 주워듣는 세상살아온 모습은 별 다를게 없다.
그와중에 돈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들, 그렇게 사는게 당연하다면 그렇게 살면된다.

내사는 방식은 내가 정한다.
내 의지대로 사는 상태.
내가 살아있음을 이외에 어찌 확인할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de12 트랙백 0 : 댓글 0

귀농전략

2011/10/26 11:40 from 먼산

귀농: 농부로 사는것 (내나름대로 재정의한 개념풀이)
전략: 전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 나라의 군사와 경제 및 정치를 비롯한 모든 자원을 이용하는 기술

뜻풀이로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 조합이지만 통상 이해되는 범위로 이해하고
내 계획을 뜬구름 잡는다는 식으로 취급하는 이들 들으라고 조목조목 실질적으로 이야기를 푼다.
물론, 이 계획은 수시로 고치고 다듬어진다.

사실, 귀농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겉으로 봐서는 시골에 살러 가는 "이사" 만으로도 "귀농"이니까.
문제는 그곳에서 뭘 하고 살것이냐인데
그건 그곳에 정착할 장소를 마련하는것에서 비롯된다.

기본여건, 즉, 현재 가진 자금으로 땅을 마련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 경우 그럴 여유가 안되니 대게 그러듯 '빈집'을 구 할 일이다.
예정지에서 수소문 해 몇 집을 둘러 봤는데 너무 낡아 수리는 커녕 새로 지어야 할 판이다.
이에 귀농선배 경우처럼 마을회관을 빌릴 수 있기를 바라는 중이다.
나 혼자라면 크게 문제될것도 없는데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적절한 답은 아니다.
다만, 귀농시기를 이른 봄으로 잡은 덕에 겨울전까지 시간여유가 있다.
자투리 땅이라도 구해지면 흙부대집을 지을 계획이다.
일단 네평짜리 방 한칸과 뒷간. 다음은 부엌, 창고 순으로 증축할것이다.
건축관련 법률 문제도 알아 볼 일이다.

집문제와 별개로 이른 봄을 귀농시기로 잡은 가장 큰 이유이자,
혼자 준비하며 상담했던 거의 모든 농민들이 말리던 나락농사.
내 귀농성공여부의 첫단추는 나락을 거둘수 있냐 없냐에 달렸다.
자급자족의 맨 밑바닥이니까.
다행히 예정지 주변에 농지정리 안된 노는 논이 제법있어
두마지기 정도의 도지는 쉽게 구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다.
토종을 구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반마지기는 직파를 해볼 작정이다.
해당지역에 물이 귀하다.
농업용수를 거의 지하수로 퍼올려 쓰고 있는 실정이어서 꼭 시도해 봐야 할 과제다.
옛날엔 제법 흘렀다는 내(川)가 비온 뒤에 가봤음에도 실개울이었다.
농법은 우렁이가 맞겠다.
오리는 알을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지만 현재로선 관리나 시설이 버거울것 같다.
나중에 오리 목을 비틀 담력이 없는것도 큰 이유.

3~4년 내 나락거두기를 성공한다는 가정하에
부산에 남은 식구들이 그토록 걱정해 마지 않는 돈나올 구멍으로 "멋(사과)"을 골랐다.
해당지역에 고랭지 과수로 이미 자리를 잡은 이유도 있지만
일단 내가 사과를 좋아하고, 역시나 "기무라 아키노리"의 영향이 크다.
또 궂이 작물로 돈을 번다면 그사람 방법이 그나마 제대로 된 돈벌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 양심에 맞는 돈벌 꺼리를 학교다니면서 알게되었는데
바로 인력 농기구 개발이다.
이미 "인력 쟁기"가 관심 끌고 있는데 자전거동력을 좋아하는 내가 볼때는 개조의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일단, 자전거 쟁기를 구상중이고 이후엔 아내를 위해 자전거 배틀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만들어진다면 농사가 덜 힘들어지는걸 넘어 재미있는 농사가 될걸 상상하면 기분 좋아진다.
그렇게 되면 농사체험이란 틀조차 차원이 바뀌는건 아닌지.

"먹는걸로 장난 치지 말라" 는 말에 빗대면 작물을 팔아 돈버는 모든 행위가 이에 속하니
차라니 인력농기구 개발이 떳떳한 장사거리가 되겠다.

사람들이 말하는 돈구멍을 뚫어야 하는 이유중 가장 큰 까닭을 짐작해 본다.
아플때와 교육정도로 걸러지는데
아플때 드는 돈은 솔찍히 답이 없다.
이미 들어 있는 보험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점에서 의료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한다.
예방을 기본으로 좀더 궁리해보야 할 부분.

다음으로 크게 꼽는 "교육"
논어 학이편에 이르길 (논란이 분분한 부분은 빼고)
"배우고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

배우고 익히는것은 자신의 몫이다.
'주입식'이니, '자기주도식'이니를 방법론으로 볼 수 없다.
그것들은 억지와 다그침의 말장난이다.

'사교육', '공교육', '대안교육'도 틀린 구분이다.
장사와 복종과 또다른 돈벌이로 나누는게 좀더 정확하다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은 본보기와 가르침이다.
상대적으로 얕은, 좁은,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를 설득하는것.
이것이 본보기와 가르침. 곧 교육의 본질이다.

본보기와 가르침을 위한 설득이 말로만 이뤄질까?

실제로 우리집은 처음부터 텔레비젼이 없다.
신혼때 아내가 심심해 죽으려 해서
박시백이 그린 "조선왕조실록"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살렸다.
만화로 재미를 붙여주자 곧 조선사 관련 책을 찾아 빌려 보기 시작했다.
(결국, 소설로 빠져 조금 아쉽긴 했지만 - 나는 소설을 안 읽는다.)
분위기가 잡힌 것이다.
당연히 아이들도 책을 잡고 놀고,
특히, 맏이는 내가 읽어 준 글 모양을 어느새 익혀 꽤 어려운 받침도 읽어 내는가 싶더니
어느날엔가 자기 이름을 삐뚤빼뚤 적어서 내게 자랑 하기에 이르렀다.
자기책 두권 가진 작년, 네살때 일이다.
주위 분위기에 들떠 당시 일곱살, 다섯살짜리 조기교육에 열올리던 여동생에게 의도치 않게 한방 먹인 사건이었다.
그동안 불안해 하던 아내는 이후 내 교육관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는다.
물론, 어쩌다보니 생긴 결과일수도 있다. 또 언젠가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때가 올것도 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남과 같이 호들갑 떨 필요를 못 느낀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을 실감한 나로선
읽기와 글쓰기, 말하기를 다시 공부하고 있다.
내가 공부를 하면 장난감 갖고 놀다가도 자기들 책 들고와 곁에 쪼로록 앉는다.
아들은 상어에, 딸은 공주에 푹 빠져있다.

이런 아이들을 소위 좋은 직장에 취직시키기 위해,
결국 자본주의 소모품으로 만들 대학에 보내기 위해
저는 저대로 나는 나대로 의미없는 고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스스로 자기 여건을 선택할 권리를 뺏은 거라고는 안 보냐?"는 반문에 대해선
시골이 없는 집안 여건상 개발되기전 영도 동삼동으로 어릴때 이사와 준시골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도시생활과 비교할 정서를 어찌 다졌을까.
여전히 시골이 없는 친지관계인 지금, 내가 직접 그 터를 잡지 않으면
걱정하시는 선택의 여지를 주지 못하는건 오히려 도시에 눌러 살때라 본다.


<<계속 덧 붙여지고 고쳐집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de12 트랙백 0 : 댓글 0

씁쓸한 의문

2011/06/27 09:43 from 먼산
왜 내생각과 비슷한 사람들 대부분은 종교를 갖고 있나..
사회적 현상에 대한 그들의 의견은 참 냉철한데 결국 그들 한구석엔
내가 그토록 어처구니 없어하는 '종교'가 자리잡고 있다.
어제 언듯 실마리가 될만한 말을 흘려 들었는데 도통 기억이 안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de12 트랙백 0 : 댓글 0